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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 음악

Rage Against The Machine 세상과 자본, 시스템에 대한 분노를 음악에 담은 밴드

by 라커빌리 2024.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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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에는 90년대 초반부터 2000년 대 사이에서 가장 밴드의 색체가 뚜렷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밴드인 Rage Against The Machine에 대해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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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tm

탄생 배경과 이야기

Rage Against the Machine(이하 RATM)은 1991년 로스앤젤레스에서 결성된 미국의 록 밴드로, 사회적,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강렬한 음악으로 유명합니다. 밴드의 탄생은 보컬리스트 잭 드 라 로차와 기타리스트 톰 모렐로의 만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음악을 통해 불평등과 부조리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드러머 브래드 윌크와 베이시스트 팀 코머포드가 합류하면서 라인업이 완성되었고, 곧 강렬한 라이브 퍼포먼스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1992년,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을 발표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 앨범은 밴드의 정치적 메시지를 담아내며 팬들과 평론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았고, 밴드는 곧 록 음악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밴드 멤버 소개

1. 잭 데 라 로차 (Zack de la Rocha) - 보컬리스트로서, 강렬한 랩 스타일과 카리스마 넘치는 퍼포먼스로 밴드의 중심 역할을 합니다. 그의 가사는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2. 톰 모렐로 (Tom Morello) - 기타리스트로, 혁신적인 연주 스타일과 다양한 이펙트를 활용한 독창적인 사운드로 유명합니다. 그의 기타 연주는 RATM의 독특한 음악적 색깔을 만드는 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3. 팀 코머포드 (Tim Commerford) - 베이시스트로, 묵직한 베이스 라인으로 밴드의 사운드를 단단히 받쳐줍니다. 그의 연주는 밴드의 음악에 힘과 깊이를 더해줍니다.

4. 브래드 윌크 (Brad Wilk) - 드러머로, 강력하고 정교한 드러밍으로 밴드의 리듬을 이끌어갑니다. 그의 퍼포먼스는 라이브 공연에서 큰 에너지를 전달합니다.

 

대표곡 5개 소개와 곡에 대한 설명

1. "Killing in the Name" - RATM의 가장 유명한 곡 중 하나로, 인종차별과 권력 남용에 대한 분노를 담고 있습니다. 강렬한 기타 리프와 반복적인 가사가 인상적입니다.

Killing in the name

 

 

2. "Bulls on Parade" - 군사 산업 복합체와 자본주의의 폭력성을 비판하는 곡입니다. 톰 모렐로의 혁신적인 기타 솔로가 돋보입니다.

Bulls on parade

 

3. "Guerrilla Radio" - 정치적 각성과 저항의 메시지를 담은 이 곡은, 2000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발표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에너지 넘치는 리듬과 강렬한 보컬이 특징입니다.

Guerrilla Radio

 

4. "Bombtrack" -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을 비판하는 곡으로, 강렬한 리듬과 데 라 로차의 격렬한 보컬이 인상적입니다. 이 곡은 데뷔 앨범의 오프닝 트랙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Bombtrack

 

5. "Testify" - 미디어의 왜곡과 정치적 선전에 대한 비판을 담은 곡입니다. 강력한 리프와 신랄한 가사가 돋보입니다.

Testify

 

 

밴드에 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

RATM의 공연과 활동에는 여러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습니다. 한 번은 뉴욕 증권거래소 앞에서 비공식 공연을 시도하다가 경찰에 의해 저지당했습니다. 이 사건은 밴드의 반체제적 성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또 다른 에피소드로는 1999년 MTV 뮤직 비디오 어워드에서의 퍼포먼스가 있습니다. 데 라 로차는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무대 위에서 강렬한 퍼포먼스를 펼쳤고, 이는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또 하나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3집의 Sleep now in the fire라는 노래의 끝부분에 엄정화의 포이즌의 “널 뒤로 한 채 그냥 걸었어”라는 부분이 삽입이 되어 있는데요. 이는 녹음과정에서 한인라디오 주파수와 혼선이 되어 잡음으로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몇 번이고 다시 녹음을 했지만 그대로 앨범에 실렸다고 하네요.

 

그리고 우리나라의 1세대 아이돌인 H.O.T.의 열맞춰가 Killing in the name을 표절했다는 의혹도 있었습니다. 이후 어떻게 사건이 일단락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영국에서 2009년 Killing in the Name의 크리스마스 차트 1위 사건도 있습니다. 2009년 크리스마스 차트 1위 사건은 Rage Against the Machine(RATM)의 “Killing in the Name”이 영국 크리스마스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영국의 음악 팬들이 소셜 미디어 캠페인을 통해 주도한 결과로, 당시 영국의 대중 음악계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영국의 크리스마스 싱글 차트 1위는 전통적으로 큰 영예로 여겨집니다. 2000년대 들어,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인 The X Factor의 우승자가 크리스마스 차트 1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The X Factor의 우승자들은 연속으로 1위를 차지했고, 2009년에도 그럴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영국의 네티즌들은 이에 반발하여 RATM의 “Killing in the Name”을 크리스마스 차트 1위로 올리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했습니다. 이들은 페이스북 그룹을 만들어 캠페인을 시작했고, 곧바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캠페인에 동참했습니다. 캠페인은 대중음악 산업의 상업화와 The X Factor의 독점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캠페인은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Killing in the Name”을 구입하며 차트에 반영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2009년 12월, “Killing in the Name”은 크리스마스 주간에 5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The X Factor 우승자 조 맥엘더리의 싱글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는 1992년 발매된 이후 약 17년 만에 차트 정상에 오른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차트 1위를 차지한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대중의 힘과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을 보여주었으며, 음악 산업의 독점 구조에 대한 반발을 상징하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RATM은 이에 감사하며 무료 콘서트를 열겠다고 약속했고, 실제로 2010년 6월에 런던에서 대규모 무료 공연을 열어 팬들에게 보답했습니다.

 

또한, 이 사건을 통해 모인 수익금 중 일부는 자선단체에 기부되었고, 이는 음악을 통해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이 사건은 음악 팬들이 집단적으로 행동하여 대중문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현재 멤버들의 근황

RATM은 여러 차례 해체와 재결합을 반복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밴드는 다시 한번 재결합하여 팬들에게 기쁨을 주었습니다. 잭 드 라 로차는 솔로 활동을 지속하며, 정치적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톰 모렐로는 Audioslave와 Prophets of Rage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솔로 앨범도 발표했습니다. 팀 코머포드와 브래드 윌크 역시 각각의 음악 프로젝트와 밴드를 통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밴드가 음악계에 미친 영향

RATM은 록 음악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들의 음악은 힙합과 록을 결합한 독특한 스타일로, 이후 많은 밴드와 아티스트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또한, 그들의 정치적 메시지는 팬들에게 강한 인식을 심어주었으며, 사회적, 정치적 의식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RATM의 음악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그들의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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